[이에리사휴먼스포츠_성명서]

책임지는 리더의 모습을 촉구한다

- 故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 인적 쇄신 없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 인적 쇄신으로 대한체육회 자정 능력에 대한 의구심 해소해야

- 존재하는 제도와 시스템 누가 제대로 가동시키느냐가 핵심

○ 지난 6월 26일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등졌다. 대통령의 특별조사 지시라는 전례 없는 초강수가 내려졌다. 국민들의 분노까지 더해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7월 6일 긴급현안질의를 개최했다. 회의에 참석한 책임기관의 수장들은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정보를 묻는 질의에 대해 아직까지 확보된 것이 없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한 사람이 생명을 걸고 남긴 유언(“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을 떠올릴 때 사안을 대하는 관계기관의 무심함에 참석자 모두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 대한체육회의 답변은 그마저도 거짓인 것으로 다음날 드러났다. 사건의 주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팀닥터 안 모씨가 최 선수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 3일 전인 지난 6월 23일 자신의 폭행 사실을 적시한 자필 진술서를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제출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난 4월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제출한 진정서에도 안 모씨의 폭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상태였다.

○ 체육계의 문제가 노출될 때마다 관계기관은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2014년 태권도 선수의 아버지가 심판의 편파판정 시비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자 성폭력, 조직 사유화, 횡령배임, 승부 조작을 스포츠 4대악으로 규정하며 정부, 경찰, 검찰이 연계한 합동수사반 사무소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2018년 조재범 코치에 의해 자행된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피해 사건이 폭로되면서 체육계에 만연해 온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나라 대표 스포츠 스타의 폭로였던 만큼 어느 때보다 파장이 컸고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체육회 수장에 대한 사퇴여론이 거셌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의 수장은 심석희 선수를 만난 적이 없었다는 등 몇 번의 말 바꾸기 변명 끝에 2019년 1월 사과문을 발표하며 체육회의 강력한 자정 노력 기회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구했다.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제시하였고 최고 책임자로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쇄신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사퇴의 변을 예상한 여론과는 배치되는 처사였다.

○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대한체육회는 1년 6개월 전 고개 숙여 구했던 쇄신의 기회를 흘려보냈음이 드러났다. 대한체육회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2019년 6월 이기흥 회장이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몫인 대한체육회 회장의 자격으로 IOC 위원이 되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회장선거 출마를 위해서는 선거 90일 전에 현직에서 사퇴하도록 되어 있는 정관 규정을 ‘사퇴’에서 ‘직무정지’로 개정하였다. 2021년 1월 회장 선거를 앞두고 연임을 위한 불순한 시도이자 IOC 위원 자리 유지를 위한 개정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체육회는 10월로 예정된 전국체전과 11월에 예정된 아시아올림픽 평의회(OCA) 총회라는 큰 행사를 앞두고 스포츠외교와 체육 행정 공백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조치라고 했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2020도쿄올림픽을 비롯해 올해 개최 예정이었던 행사들이 연기되면서 이 명분마저 사라진 상태다.

○ 누구를 위한 대한체육회인가. 이번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 중 팀을 해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팀 해체는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는 극단적 처사이다. 오랜 기간 만연해 온 관행의 흐름을 바꾸려면 책임자와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 문제점 해소를 위한 제도마련, 마련된 제도를 사명감 있게 운영해 갈 진정성 있는 새로운 리더를 세워야 한다. 올해 초 스포츠혁신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안 내에 이미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비롯해 체육계에 만연해 온 문제점에 대한 제도적 대안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조치는 새로운 제도마련이 아니라 이를 방조한 책임자에 대한 문책과 인적 쇄신이다.

○ 이기흥 회장은 이제 그만 사퇴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2016년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이 회장은 선거무효 등 확인소송이 제기되는 등 법적 분쟁이 있었고 정관계 골프 접대 로비 의혹으로 언론에 보도된 바 있으며,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자원봉사자에 대한 막말 사건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체육계 폭행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합당한 처벌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스포츠 인권을 위한 법과 제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책임기관이 제대로 살피지 않는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적 쇄신을 필두로 한 체육계의 변화만이 최숙현 선수의 선택에 사죄하며 보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